도로 위의 왕
"이 도로 위에서만큼은 내가 왕이다."
그러나 신호등이 바뀌면, 왕은 다시 을이 된다.
퀵서비스 기사 김동수, 8년 차. 7년 된 낡은 오토바이 PCX 125의 스로틀을 쥐고, 오늘도 서울의 도로 위를 달린다. 벤츠가 튕긴 담배꽁초가 허벅지에 떨어지고, 사무실 관제 실장의 클릭 한 번에 하루 매출이 결정되고, 50만 원짜리 호접란 화분을 목숨처럼 안고 달려도 돌아오는 건 팁 없는 영수증뿐이다. 테헤란로 빌딩의 화장실은 비밀번호로 잠겨 있고, 화물용 엘리베이터에는 에어컨 대신 짬통 냄새가 가득하다.
그래도 달린다. 0.3초 만에 콜을 수락하고, 차들 사이 30센티미터 틈새를 8차선 고속도로처럼 뚫으며, 긁히고 찌그러진 오토바이 위에서 매일 아침 시동을 건다. 한 번에 안 걸리면 두 번, 두 번에 안 걸리면 세 번.
이 소설은 도로 위의 속도감과 쾌감, 그 이면에 도사린 모멸과 위험,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관통하며 묵묵히 스로틀을 감는 한 사람의 1년을 따라간다. 봄바람에 시작해 겨울 빙판길을 지나 다시 봄으로 돌아오는 동안, 김동수는 담배꽁초의 화상 자국처럼 쉽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들을 몸과 마음에 새긴다. 적금은 번번이 깨지고, 750만 원짜리 새 오토바이는 한 번도 가까워지지 않으며, 갈비뼈에 금이 가도 병원비 대신 진통제를 고른다. 그런데도 멈추지 않는다. 멈추면 생각이 나니까. 달리면 바람이 불어오니까.
거창한 반전도, 기적 같은 역전도 없다. 대신 여기에는 천 원짜리 팁으로 산 붕어빵의 온기가 있고, "괜찮아, 아빠"라는 일곱 살짜리의 한마디가 있으며, 새벽 2시에 말없이 파스를 붙여주는 아내의 손이 있다. 도로 위에서 왕이었다가 전화기 앞에서 을이 되고, 화물 엘리베이터에서 짐짝이 되었다가 식탁 앞에서 다시 아빠가 되는, 그 끝없는 왕복 운행의 기록.
시동은 세 번 만에 걸린다. 1년 전에는 한 번이면 됐다. 같은 엔진 소리인데, 그 소리가 품고 있는 무게가 다르다.
매일 출퇴근길에 오토바이를 스쳐 보내는 사람, 누군가의 0.3초가 어떤 삶인지 궁금한 사람, '살아서 돌아온 게 다행인 하루'를 보낸 적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글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