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열린 뒤에도
처음부터 갇혀 있었던 존재는<br />자신이 갇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때가 있다.<br />바람도 그랬다.<br />그는 아주 오래전부터<br />회색 시멘트 바닥 위에서 살아왔다.<br />아침이면 희미한 불빛이 켜졌고,<br />낮이면 사람들이 유리창 너머로 지나갔으며,<br />밤이면 차가운 침묵이 우리 안에 내려앉았다.<br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기에는<br />너무 어린 시절부터 그곳에 있었다.<br />그래서 그는 묻지 않았다.<br />왜 하늘은 저렇게 멀리 있는지.<br />왜 바람은 철창 너머에서만 불어오는지.<br />왜 자신의 가슴 한쪽이 늘 설명할 수 없이 답답한지. 익숙함은 조용했다.<br />처음에는 낯설고 차가웠지만,<br />시간이 흐를수록 생각을 멈추게 만들었다.<br />생각하지 않으면 덜 아팠다.<br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하지 않았다.<br />그래서 바람은 점점 조용해졌다.<br />달리는 법을 잊었고, 울부짖는 법을 잊었고,<br />마침내는 자신이 어떤 존재였는지도 잊어버렸다.<br />하지만 어떤 것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오래 침묵하고 있을 뿐,<br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br />작게 숨 쉬고 있을 뿐이다.<br />어느 비 내리던 날,<br />바람 앞에 한 마리 암사자가 나타났다.<br />그녀의 이름은 루아였다.<br />루아에게서는 낯선 냄새가 났다.<br />젖은 흙 냄새.<br />햇빛에 데워진 풀 냄새.<br />그리고 어디론가 끝없이 이어지는 세상의 냄새. 바람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br />자신이 익숙하다고 믿었던 세계가<br />사실은 아주 작은 방이었다는 것을.<br />그리고 진짜 두려움은<br />문이 닫혀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br />문이 열린 뒤에도<br />선뜻 걸어 나가지 못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이 이야기는<br />한 마리 사자가 자유를 얻는 이야기가 아니다. 너무 오래 익숙함 속에 머물러<br />스스로를 잊어버린 존재가,<br />다시 자신의 이름을 불러보기까지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