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
불편한 생의 진실, 소외된 인생에게 건내는 들꽃 한 송이
2003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김서령의 첫 소설집. 등단작인 <역전다방>을 비롯해 그동안 발표한 작품들 중 아홉 편을 골라 엮었다. 작가의 불편한 생의 진실, 소외된 인생을 향한다. 뜨내기들이나 찾는 역전다방, 폐허가 되어버린 바닷가의 민박집, 비수기의 호숫가 호텔, 영주권을 바라고 간 호주 등. 제 상처를 끌어안고 외진 곳에 발 내린 인물들은 그러나, 제 아픔으로 깊어져 다른 이의 외로움을 가만가만 다독인다.
이른 나이에 천애고아가 되어야 했던 여고 삼수생의 이야기인 표제작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 아이와 헤어져 살아야 하는 다방 레지 <역전다방>, 아이를 언니에게 떠맡기고 새 삶을 찾아 먼 나라로 떠나간 젊은 엄마 <무화과 잼 한숟갈>, 영주권을 꿈꾸며 헤어드레서가 된 여인 <옛 애인을 만나러 가다> 등 각 작품 속 주인공들은 불행이 누적되다 결국 험한 세상을 홀로 견뎌내야만 하는 비정한 삶의 한복판에 내던져진다.
이들은 눈빛 주고받으며 정 나눌 곳 하나 없는 가난한 인생들이다. 작가는 끊임없이 그런 인생들을 서로 마주치게 하고 스쳐가게 하며 그리하여 종국에는 서로 기대어 살도록 만든다. 이번 작품집은 아기자기하면서도 조밀하고 동시에 압축과 비약, 생략이 돋보인다. 환유와 상징을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하면서 섬세한 사건들과 심리 묘사로 인물 각각의 개성을 살려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