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 향기
21세기 지식인들의 씁쓸하고 고독한 팬터마임!
김영현 소설집『라일락 향기』. 1990년대 문단을 뒤흔들었던 중견작가 김영현이 10여 년 만에 펴낸 소설집으로, 일곱 편의 단편들이 담겨 있다. 1999년에 발표한 <개구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지난 5년 동안 쓴 작품들이다. 리얼리즘 형식과 실험적인 형식이 뒤섞인 새로운 형식을 시도하며, 김영현 후반기 문학의 출발을 알리고 있다.
이번 작품집에서는 한 인물이 다른 인물에게 숨겨놓은 이야기를 털어놓거나 다른 인물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는 방식의 이야기 들어주기가 돋보인다. 일인칭 화자의 장황한 독백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삼인칭의 주인공과 그 주인공의 분신 역할을 별도로 설정하여 서술의 단조로움을 피했다. 작가는 시간, 즉 망각과 추억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21세기 지식인들의 고독한 내면을 보여준다.
<개구리>는 주인공에게 보내온 이공의 편지와 일기, 그리고 그가 주인공에게 남겼던 말들로 이루어져 있다. <낯선 사내와 술 한잔>과 <나는 몽유하리라>에서는 망각의 이야기를, <라일락 향기>와 <점골에서 생긴 일>에서는 추억의 이야기를, <여름에서 겨울 사이>와 <일영에서 보낸 나날들>에서는 글 쓰는 작업에 중심을 둔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