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하다 그만둔 날
가리봉의 사연들이 살아 숨 쉬는 김사이의 첫 시집
김사이 시집『반성하다 그만둔 날』. 2002년 계간 시평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사이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이다. 시인은 1980년대 노동운동의 상징적인 공간이었지만 이제는 잊혀진 역사를 간직한 공간이자, 소비문화와 재개발 정책으로부터 소외된 이주노동자들의 노동현장인 가리봉동에 밀착되어 있는 삶을 딛고 일어서려 한다.
가리봉의 시인 김사이는 과거의 활력을 잃어버리고 체제적 메커니즘의 막다른 배수구가 되어가고 있는 그곳에서 육체의 의지가 선과 악의 윤리적 구분을 넘어서는 삶을 펼쳐보인다. 유년을 고백하는 2부의 시들과 1부, 3부, 4부에서의 가리봉의 현재는 서로 교류하며 여성으로서, 한 개체로서, 하나의 생명을 품은 존재로서의 자신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특히 표제작 <반성하다 그만둔 날>에는 과거와 현재가 교차된 시대의 얼굴이 담겨 있다. 반성을 그만둔 시인은 정치적 구호 대신, 서울이라는 이름의 배수구가 보여주는 기이한 삶의 국면들을 폭넓게 포착해 보여준다. 시인을 오랫동안 붙잡았던 가리봉을 떠나기 직전 서울과 여성의 노동, 그 삶의 그늘진 풍경을 그려낸 시집이다.
☞ 이 책에 담긴 시 한 편!
<반성하다 그만둔 날> 중에서
엉거주춤 따라간 나이트클럽에 취해 돌아보니
얼큰히 달아오른 얼굴들이 흐물거리고
춤을 추는 무대 위엔 노동자도 자본가도 없다
신나게 흔들어대는 사람들만 있다
찝쩍대고 쌈박질하고 홀로 비틀어대는,
아주 빠르게 회전하는 형형색색의 불빛들 아래
조금씩 젖어가며 너나없이 한 덩어리가 되어 출렁거린다
낯선 이국땅에서 총 맞아 죽고 굶어 죽어도
매일 밤 일탈의 유혹처럼 찾아드는
이 자본의 꿀맛
도처에 흔들리는 일상들
등급 매기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