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시가 시인을 위로한다
시가 당신을 어루만진다
시인이자 시 평론가인 저자가 시를 사랑하는 마음과 사람을 어루만지는 애정을 잘 섞어담은 산문집이다. “지금은 사라진, 홍대 앞 카페 ‘예술가’에서 한 시인이 그랬다. 시의 시대는 갔다고.” 이 책은 위 문장으로 시작된다. 그만큼 현대사회에서 시가 사람들의 일상에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미미해지고 있다. 감각적인 영상이나 짧은 직설에 가까운 SNS에 비해 시는 너무도 고루하고 답답한 옥편이나 마법의 주문과도 같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는 세상에서 버려진 것들 곁에 말없이 남아있다. 근거 없는 긍정도, 슬픔조차 없는 절망의 표정 또한 짓지 않는다. 그저 각자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를 담담히, 혹은 우직하게 버티고 있다. 그 때, 시는 어떠한 마법도 부리지 않는, 마법의 주문이 된다. 피해갈 수 없는 슬픔이나 고통이 우리의 마음을 흔들고 매정히 가버린 끝에, 시는 그 슬픔을 받아들이는 마법을 선사한다. 분에 넘치는 위로나 어줍잖은 격려보다, 홀로 남아있는 빈 방 한 켠에 털썩 자리를 잡고 앉아 우리를 마주보고, 같이 울고 웃어준다.
저자는 ‘문학은 부정을 통해 환상이나 이미지를 만들어냄으로써 현실을 추문으로 만들고 더 나아가 새로운 그림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와 반대로 자기의 운명이나 존재 조건을 기꺼이 인정하고 껴안음으로써 힘없이 처진 어깨를 다독이고 쓰라린 고통의 상처를 위무하기도 한다.’ 라고 말했다. 그래서 시는 우리에게 속삭여준다. “아무것도 묻지 말고 아무것도 묻지 말고, 그냥 잘했다고. 흐르는 눈물 흐르는 피 그냥 괜찮다고, 다 괜찮다고.” (한명희, 『상담 - 소영에게』)
목차
프롤로그: 사라진 예술가, 남은 절벽
1. 외설적 아버지의 명령, “즐겨라!”
이 숨찬 경쟁의 피로, 어떻게 푸나
내 안의 슬픔을 긍정하기까지
외설적 아버지의 명령, “즐겨라!”
도시의 속도를 비추는 지하철 정거장의 시
과학보다 더 뛰어날 미래의 시
자본의 질량에 얹혀 질주하는 ‘미래파’의 운명
인지과학, 영성靈性, 현대시
2. 여러분의 ‘그것’은 안녕하신가요?
한 플라톤주의자의 비극 -김소월, 『먼 後日』
“갈매나무라는 나무”는 어디에 있습니까? -백석, 『南新義州柳洞朴時逢方』
우리들 마음에 도둑이 들었다 -성찬경, 『다이아몬드의 별』
여러분의 ‘그것’은 안녕하신가요? -안도현, 『가련한 그것』
자멸파의 정념 -이영광, 『동해 2』
다만 그냥 놀자는 것뿐인데 -이수명, 『시작법詩作法』
인생은 사무치는 모순 -서상영, 『꽃범벅』
쓸쓸한 자기애의 늪 -하정임, 『즐거운 골목』
3. 나쁜 남자 VS ‘나쁜 소년’
뻐끔뻐끔 항문으로 말하는 사람들 -황병승, 『여장남자 시코쿠』
투구 안에 흐르는 눈물 -한명희, 『내 몸 위로 용암이 흘러갔다』
그림자와 벌이는 위험한 연애 -김소연,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먹어야 산다는 치욕 -김기택, 『껌』
나쁜 남자 VS ‘나쁜 소년’ -허연, 『나쁜 소년이 서 있다』
얼마나 오래도록 마음을 타고 놀았으면 -장정자, 『뒤비지 뒤비지』
욕망의 연금술 -최명선, 『기억, 그 따뜻하고 쓰린』
내 쪽으로 죽음을 끌어당기는 이유 -김초혜, 『고요에 기대어』
어느 날 그는 어머니 묘지에 앉아 있을 거다 -황지우,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4. 밥과 어머니 또는 보살핌의 윤리
영원한 어린이의 눈, 마이너리티의 슬픔 -김상미의 시
정처 없는 이 발길 -정병근의 시
저 푸른 초원 위에, 섬뜩한 숭고 -김선태의 시
밥과 어머니 또는 보살핌의 윤리 -상희구의 시
기다림의 힘, 견딤의 아름다움 -윤은경의 시
응시와 죄의식 -이창희의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