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주가 시공업체에 휘둘리지 않고 집짓는 법
대한민국에서는 아파트에 살아야 한다. 대한민국은 아파트공화국이어서 국민 모두가 아파트에 살기에 최적화된 나라다. 아파트는 단순히 주거공간이 아니다. 아파트는 재테크에 최적화된 재화수단이다. 아파트 가격은 천정이 없다. 아니 하늘도 없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지만 아파트는 아예 날개가 없다. 죽었다 골 백번 깨어나도 추락할 일이 없는 것이 대한민국 아파트다. 이런 대한민국에 살면서 자기가 살 집을 자기가 직접 손수 짓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런 발칙(?)한 상상을 하고 그 상상을 현실로 옮기는 무모한 자들이 있다니 그저 놀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런 제도 밖 사람들은 불순한 상상이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한지를 알리는 경종이 주택현장 곳곳에서 울린다. 하지만 그 경종은 메아리가 되지 못하고 찻잔 속 태풍으로 그친다. 오늘도 자기가 살 집을 자기가 짓겠다는 모모한 자들이 여전히 생겨난다. 대한민국에서 자기가 살 집을 스스로 짓겠다는 것은 자청해서 칼날을 쥐겠다는 거다. 칼자루는 시공업체가 쥐고 있다. 이건 아파트도 다를 바 없다. 아파트에 물이 새고 벽에 금이 가도 항의를 못한다. 왜? 그럼 아파트 가격 떨어지니까 그냥 묻고 살자는 거다. 아파트도 이럴진대 주택은 말해 뭐할까. 대한민국에서 아파트가 아닌 집을 짓는 시공업체는 아무나 누구나 할 수 있다. 약간의 돈만 있으면 근사한 사무실 내고 직원 한 둘 고용해 주택사업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200㎡(60평)을 초과하지 않는 건축을 하면 건설종합면허도 건축공사업 등록도 필요 없다. 그럼 이들은 어떻게 집을 지을까? 방법은 차고 넘친다. 200㎡(60평)만 넘지 않으면 된다. 머리 좋기로는 세계 으뜸인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에서 집을 짓는다는 것은 건축주가 칼날을 쥐고 시공업체는 칼자루를 쥔 형국이다. 건축주에게 이건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칼날을 세게 쥐면 쥘수록 자신의 손에 상처만 깊어진다.
그럼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자기가 살 집을 자기가 직접 짓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핀이나 최소한의 방책은 없나? 있다. 건축주와 시공업체의 관계를 칼날과 칼자루의 관계가 아닌, 인생의 어느 시점에 만나 같은 방향으로 같은 길을 걷는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이게 무슨 귀신 신 나락 까먹은 소리 같지만 이걸 할 주체는 결국 건축주다. 시공업체가 지자체가 국가가 못한다면 건축주가 해야 한다. 그걸 바로 잡은 첫 번째가 계약서에 있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야 한다. 계약서에 있는 칼날과 칼자루의 관계를 없애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사이좋게 나란히 걸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먼저 계약서를 알아야 한다. 알아야 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집을 짓는 건축주 대부분은 건축계약서에 사인을 하기 전까지만 소위 칼자루를 쥔다. 계약을 한 다음부터 칼자루는 시공업체가 쥔다. 앞에서 말 한 것처럼 건축주와 시공업체가 칼날과 칼자루의 관계가 아닌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집을 짓을 수 있는 방법이 이 책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