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징비록(懲毖錄)
- 저자
- 류성룡 저/오세진,신재훈,박희정 역
- 출판사
- 홍익출판미디어그룹
- 출판일
- 2021-02-10
- 등록일
- 2021-06-09
- 파일포맷
- EPUB
- 파일크기
- 31MB
- 공급사
- YES24
- 지원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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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임진왜란 통한의 기록’『징비록(懲毖錄)』은 류성룡(柳成龍)이 집필한 임진왜란 전란사로, 역사적 참극을 통해 오늘을 사는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통한의 기록이다. 류성룡은 7년여에 걸친 전란 동안 조선의 백성들이 겪어야 했던 참혹한 상황을 기록하고 일본의 만행을 성토하면서, 그러한 비극을 피할 수 없었던 조선의 문제점을 낱낱이 파헤친다. ‘징비(懲毖)’는 『시경(詩經)』에서 따온 말로 ‘지난 일을 경계하여 후환을 대비한다’는 뜻이다. 류성룡은 이 책을 통해 참혹했던 전쟁의 경위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조선과 일본, 명나라 사이의 밀고 당기는 외교전, 전란으로 인한 백성의 피폐한 생활상, 전쟁에 나섰던 숱한 인물들의 처절한 활약상을 생생히 전한다. 여기다 민족적 재앙에 대비하지 못한 무능한 왕조와 전쟁 중에도 당파싸움을 멈추지 않은 벼슬아치들 등 당시 정치사회 상황까지 고발한다.
저자소개
임진왜란 당시 군사와 외교에서 핵심 업무를 맡았던 문신이다. 1542년 경상도 의성에서 황해도 관찰사 유중영의 아들로 태어나 16세에 향시에 급제했다. 청년기에는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 공부했고 스물다섯에 문과에 급제한 뒤 중요한 관직을 두루 거쳤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에는 좌의정과 병조판서를 겸하고 있었으며 다시 도체찰사에 임명되어 군사와 국방 외교에서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 임금의 피난, 명나라 구원병 교섭, 평양과 서울 탈환, 권율과 이순신의 발탁, 군사력을 강화 하는 일 들에서 큰 공을 세워 전쟁 중에 다시 영의정에 오르지만, 정유재란 이후 반대파의 탄핵을 받아 관직에서 쫓겨난다. 그 뒤에는 오로지 글쓰기에만 몰두했다. 1607년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며, 호는 서애西厓이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저서로 『징비록懲毖錄』 『서애집西厓集』 『난후잡록亂後雜錄』 『신종록愼終錄』 『영모록永慕錄』 『관화록觀化錄』 『운암잡기雲巖雜記』 등이 있다.
목차
머리말들어가는 글징비록 서 / 권1 / 권2 / 권3 / 권4 / 녹후잡기 / 부록이미지 출처참고도서찾아보기징비록 깊이 읽기 차례 1. 일본의 호전적인 속성을 꿰뚫어 본 신숙주의 《해동제국기》2. 임진왜란의 전초 기지 나고야 성3. 류큐 국과 동아시아4. 진관 제도와 제승방략의 차이 : 지역 방어와 대인 방어5. 조선의 포로 송환 정책과 범릉적 사건6. 선조의 의주 몽진과 정권의 교체7. 명나라 군대의 다국적군 성격8. 이순신과 원균의 만남과 갈등9. 신화의 탄생 학익진 전법 : 옥포 해전부터 한산도 대첩까지10. 영천성 수복과 의병 연합군의 활약11. 이여송의 평양성 탈환과 명나라 원군의 이중적인 면모12.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강화 조건과 협상 결렬의 전말13. 칠천량 해전의 참패와 정유재란의 발발14. 최후의 전투 노량 해전과 이순신의 죽음15. 괴상한 징조인가, 정책적 무지인가?16. 선릉과 정릉 도굴 사건과 중종의 시신 처리 문제17. 선조의 재조지은 강조와 의병장들에 대한 차가운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