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는 확실히 ‘낮’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한낮의 소란스러움이 차분히 내려앉고 하늘이 오렌지색에서 남색으로 그리고 점점 더 어두운 빛깔로 물들기 시작하면,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생경한 세상이 펼쳐진다. 바로 ‘밤’이라는 깊고 고요한 세상이. 가쿠타 미츠요의 새 책 『천 개의 밤, 어제의 달』에는 낯선 타국에서, 그리고 낯익은 도시에서 언젠가 한 번쯤 만나봤을 법한 밤의 짙은 감성이 가득하다. 『종이달』의 저자이자 나오키상 수상 작가이기도 한 그는 여러 가지 주제를 그에 딱 맞는 문체로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담백하게 표현해내기로 정평이 나 있는데, 이번 책에서는 밤을 닮은 잔잔하면서도 고요한 문체를 만나볼 수 있다.
책에는 어린 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마주한 각양각색의 밤이 펼쳐진다. 인공적인 건물이 하나도 없는 몽골의 대지에서 바라본 잿빛 밤. 새벽 1시가 넘도록 네온사인이 반짝이던 도쿄의 밤. 우뚝 솟은 기암 사이사이로 빛나던 별을 올려다보던 그리스에서의 밤. 이제 그만 사랑을 접기로 마음먹었던 플랫폼에서의 밤. 이사하는 날, 짐 박스로 가득한 방 안을 살펴보기라도 하는 듯 창문에 찰싹 들러붙은 까만 밤……. 밤은 실로 다양한 얼굴을 하고 다양한 감성을 선사한다. 그가 전하는 갖가지 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애잔하면서도 그리운 느낌을 가득 안고 밤의 세계를 함께 여행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밤 특유의 분위기와 저자의 사유가 한데 어우러진 이 책은 밤의 정서를 깊이 느끼고픈 이에게 더없이 좋은 한 권이 될 것이다.
저자소개
섬세하고 날카로운 심리 묘사로 일본에서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하며 필력을 인정받은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 나이 듦에 관한 두려움과 기대, 반려 고양이를 향한 애정, 좋아하지는 않지만 꾸준히 해온 운동 이야기 등을 유쾌하면서도 담백한 에세이로 풀어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여러 가지 주제를 그에 딱 맞는 문체로 표현해낸다는 평을 받는 그답게 『천 개의 밤, 어제의 달』에서는 밤처럼 고요한 감성과 문체를 만나볼 수 있다. 와세다대학교 제1문학부를 졸업하고 1년 뒤인 1990년에 『행복한 유희』로 가이엔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공중정원』으로 부인공론문예상, 『대안의 그녀』로 나오키상, 『8일째 매미』로 중앙공론문예상, 『종이달』로 시바타 렌자부로상 등 굵직한 여러 문학상을 받았다. 『종이달』을 비롯한 여러 작품이 영화나 TV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소설 이외에 『언제나 여행 중』, 『아주 오래된 서점』, 『무심하게 산다』, 『어느새 운동할 나이가 되었네요』 등의 에세이를 썼다.
목차
일찍이 내게 밤은 없었다여행의 시작은 밤 밤의 민낯을 만나다두렵지 않은 밤달의 사막 밤과 초라한 숙소밤의 아틀라스천국 열차와 지옥 열차무위도식하는 밤바다의 밤, 산의 밤 아차 싶은 밤남자를 지키다환상을 만나는 밤밝은 밤 속에서 깨닫다기도하는 마음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밤밤이라는 터널세상 어디든 우리 동네 같지는 않다시간과 여행하다누군가를 알게 되는 밤사랑이 끝나던 밤그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영혼이 여행하는 밤고독한 밤과 전화해설 니시 가나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