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 짓는 늙은이
[한국 시나리오 걸작선] 제22권. [한국 시나리오 걸작선]은 한국 영화 역사의 초기 작품부터 최근 신작까지 다양한 시나리오를 선정하여 소개하고 있다. 휴대하기 편리한 판형으로 만들어, 시나리오를 쉽게 접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홀로 움막 속에서 독을 구우며 생활하는 송 영감은 우연히 옥수라는 젊은 여자의 생명을 구해준다. 마땅히 갈 곳 없던 옥수와 함께 살며 늘그막에 아들 당손이까지 얻은 송 영감은 새삼스런 행복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송 영감의 독 짓는 일을 배우러 젊은 청년 석현이 찾아오자 옥수는 석현에게 마음을 빼앗겨 함께 도망가 버린다. 허탈감을 이기지 못한 송 영감은 결국 자살하고,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난 뒤 옥수는 움막을 찾는다. 그 순간 장성한 당손은 초췌한 여인을 그저 의아해 하면서 바라볼 뿐이다. 이 영화는 토속적 소재를 다룬 소설이 모태인 1960년대 문예 영화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황순원의 원작을 각색한 [독 짓는 늙은이]는 평생 독을 굽는 일을 하던 도공이 인생의 마지막에서 맞는 애환과 허탈한 심정을 흙과 불의 이미지를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가난에 몰려 젊은 도공과 함께 도망친 아내에 대한 원망, 젊은이에게 밀려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닥치는 몰락의 쓸쓸함을 묘사하고 있는 원작의 비장함은 영화에서도 토속적인 열망과 갈등의 모습으로 시각화하고 있다. 원작이 묘사하고 있는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도 결코 원작의 무게에 짓눌리거나 단순히 스토리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적인 감성을 새롭게 창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