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리온 포이히트방거의 최초의 역사 소설이자 그에게 가장 큰 성공을 안겨 준 작품이다. 실존 인물인 요제프 쥐스 오펜하이머(1698?~1738)의 삶과 죽음에서 영감을 받아 쓴 소설로서, 신성 로마 제국 치하의 뷔르템베르크 공국에서 유대인의 신분으로 권력의 정점까지 올랐다가 끝내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한 한 인간의 정신적 승화와 구원의 서사를 장대하게 그려 냈다. 출간 이후 20여 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으며 전 세계 300만 부 이상이 판매되어 베스트셀러 자리에 올랐다. 이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로타르 멘데스의 영화(1934)는 뉴욕 상영 당시 아인슈타인과 찰리 채플린이 관람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저자소개
1884년 7월 4일 독일 뮌헨에서 태어났다. 유대교 정통주의자 집안에서 평생 유대 민족주의에 회의적이었다. 뮌헨 대학에서 문학과 역사, 철학을 공부하며 하인리히 하이네의 단편을 연구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나, 유대인에 대한 자격 제한으로 교수자격논문 집필을 단념해야 했다. 문화 잡지 [슈피겔Der Spiegel]을 창간했다.
연극비평 및 극작가로 출발해 이름을 알리다가 차츰 창작의 중심을 역사소설로 옮긴다. 이렇게 해서 나온 역사소설 『유대인 쥐스』와 『추한 공작부인』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특히 희곡으로 집필해 무대에 먼저 올렸다가 1925년 소설화한 『유대인 쥐스Jud Suß』는 초판 3개월 만에 4만 부가 팔렸으며, 15개 외국어로 번역되어 당시로서는 대단한 베스트셀러였다. 지금까지 『유대인 쥐스』는 전 세계에서 20개 이상의 주요 외국어로 300만 부 이상이 번역 출판되었다. 『유대인 쥐스』의 성공으로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힌 포이히트방거는 1933년 미국에서 강연 여행을 하게 된다.
해외 체류 중 독일 나치 정권의 집권으로 귀국이 좌절되고 그의 책들은 불태워지고, 국적 및 박사 학위도 박탈당하며, 베를린의 집과 재산은 압류당한다. 이 시기의 문학적 결실이 『오퍼만 자매』(1933)이다. 1937년 1월에는 체코슬로바키아를 경유해 모스크바로 가서 스탈린과 인터뷰를 하고, 스탈린을 찬양하는 기행문 「모스크바」(1937)를 발표하는 등 한때 나치즘에 항전할 것을 촉구하며 소련에 희망과 지지를 보내기도 했는데, 이 일은 이후 냉전 시대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서 이념적 횡포에 시달리는 구실이 되었다.
1940년 5월 독일군이 서유럽을 침공할 당시 프랑스 남부 엑상 프로방스 인근 레 밀에 머무르고 있던 포이히트방거는 이미 1939년 대전이 발발했을 때 한 번 억류된 적이 있던 그곳 포로수용소에 다시 수감되었다. 미 영사관의 도움으로, 여자로 변장한 채, 간신히 마르세유로 탈출하였다. 그곳에서 피레네산맥을 넘어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이때의 체험이 자서전 『 잔인한 프랑스』(1942)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1940년 10월 뉴욕에 도착하였고, 이듬해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였다. 여러 작품에서 민족주의와 세계시민주의 사이에 서 있는 유대인의 독특한 시각과 성찰을 보여주었다. 이후 『미국을 위한 무기』(1947/1948),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삶과 예술적 열정을 생생하게 형상화한 작품 『고야, 혹은 인식의 혹독한 길』(1951)에서는 인간과 예술에 대한 보편적 진리를 탐색하는 작가의 문제의식이 잘 드러난다.
그리고 『톨레도의 유대 여인』(1955)을 발표하였다. 이들 작품으로 포이히트방거는 위대한 망명문학의 작가 대열에 합류한다. 1953년에는 동독으로부터 '문학과 예술 분야의 1등 국가상'을 받았다.
그는 반파시즘 운동을 전개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작품을 발표하며 역사와 문학의 선의에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1958년 12월 2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영면했다. 캘리포니아의 산타 모니카 묘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