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에 박지원(朴趾源)이 지은 한문 단편소설. 작자의 연행일기인 ≪열하일기≫ 관내정사(關內程史)에 실려 있다. (호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호(大虎)가 사람을 잡아 먹으려 하는데 마땅한 것이 없었다. 의사를 잡아먹자니 의심이 나고 무당의 고기는 불결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청렴한 선비의 고기를 먹기로 하였다. 이 때 고을에 도학(道學)으로 이름이 있는 북곽선생(北郭先生)이라는 선비가 동리자(東里子)라는 젊은 과부와 정을 통하였다. 그녀의 아들들이 북곽선생을 여우로 의심을 하여 몽둥이를 들고 어머니의 방을 습격하였다. 그러자 북곽선생은 허겁지겁 도망쳐 달아나다가 그만 어두운 밤이라 분뇨구덩이에 빠졌다. 겨우 머리만 내놓고 발버둥치다가 기어나오니 이번에는 큰 호랑이가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호랑이는 더러운 선비라 탄식하며 유학자의 위선과 아첨, 이중인격 등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북곽선생은 정신없이 머리를 조아리고 목숨만 살려주기를 빌다가 머리를 들어보니 호랑이는 보이지 않고 아침에 농사일을 하러 가던 농부들만 주위에 서서 그의 행동에 대하여 물었다. 그러자 그는 농부에게, 자신의 행동이 하늘을 공경하고 땅을 조심하는 것이라고 변명하였다. (호질)은 작품 글 뒤에 붙인 박지원의 논평을 통하여 만주족의 압제에 곡학아세(曲學阿世 : 道에서 벗어난 학문을 닦아 세상에 아부함.)하는 중국 인사들의 비열상을 풍자한 것으로 주제를 파악할 수 있다. 원래 중국의 어느 무명작가의 글을 연암이 약간 가필한 것이라 한다. (호질)은 전체적으로 조선 후기 사정에 비추어 두 가지 주제의 설정이 가능해진다. 하나는 북곽선생으로 대표되는 유자(儒者)들의 위선을 비꼰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동리자로 대표되는 정절부인의 가식적 행위를 폭로한 것이다. 특히, 유자의 위선을 공격하면서 호랑이가 강상(綱常 : 삼강(三綱)과 오상(五常)을 아울러 이르는 말)의 윤리를 절대당위로 조작한 북곽선생을 꾸짖은 것은 유가일반의 독선적 인간관을 풍자한 것이다. (호질)의 구성에 있어서 연암은 음란한 곳의 대명사가 된 정(鄭)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산?집?들판으로 장소를 옮기면서 황혼이 되어 음험한 계략이 꾸며지고, 밤이 되어 음란한 행위가 연출되며, 새벽이 되자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는 극한상황으로 이어지다가, 아침이 오자 다시 옛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교묘한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산에서 육혼이 유자를 추천한 것은 들판에서 북곽선생과 호랑이를 만나게 하기 위한 복선이었으며, 들판의 분뇨구덩이는 호랑이가 북곽선생을 잡아먹지 않는 상황에 필연성을 부여하고 있다. (호질)은 그 형식에 있어 전기체를 완전히 탈피하였으나 순정하지 못하다는 비판도 받았다. 동음어를 교묘하게 활용하고 민담과 전설을 삽입하면서 생략과 압축으로 완성된 이 글은 연암 스스로도 절세기문(絶世奇文)이라 평가하였다.

박지원 조선 후기 문인.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미중(美仲), 호는 연암(燕巖). 1737년 음력 2월 5일 서울 서소문 밖 반송방(盤松坊) 야동(冶洞)에서 출생했다. 그의 가문은 세신귀척(世臣貴戚)을 허다히 배출한 명문 거족으로서, 금계군(錦溪君) 박동량(朴東亮)의 아들로 선조의 사위가 된 금양군(錦陽君) 박미(朴?)를 비롯하여 부마가 된 후손들도 적지 않았다. 조부 박필균(朴弼均:1685～1760)은 금양군의 증손으로, 영조 때 정계에서 탕평책에 비판적인 노론의 일원으로 활약했으며 경기감사?참판?지돈녕부사 등을 지냈다. 부친 박사유(朴師愈:1703～1767)가 포의(布衣)로 지냈기 때문에 조부 필군이 양육하였다. 16세 때 전주 이씨와 결혼한 후 장인 이보천(李輔天)과 그 아우 이양천(李亮天)으로부터 학업을 본격적으로 지도 받았다. 20세 무렵부터 과거 공부에 전념했으나, 영조 말년의 혼탁한 정치 현실에 실망하여 번민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과거를 포기했다. 그의 초기 문학을 대표하는 ≪방경각외전 放瓊閣外傳≫은 이와 같이 장래의 거취문제로 번민하던 상황에서 창작된 것이다. 그러므로 유명한 (양반전)을 포함하여 9편의 전(傳)을 수록한 이 ≪방경각외전≫에서 그는 당시 사대부 사회의 윤리적 타락상을 통렬히 풍자했다. 1765년 금강산 유람 끝에 총석정에서 동해의 해돋는 장관을 보고 지은 한시 (총석정관일출 叢石亭觀日出)은 초기 문학을 대표하는 걸작이다. 1771년 경부터 서울 전의감동에 칩거하면서, 법고창신(法古創新)을 골자로 한 특유의 문학론을 확립하고 이를 적극 실천하여 참신한 소품(小品) 산문을 왕성하게 창작했다. 또한 홍대용(洪大容)을 필두로 이덕무(李德懋)?박제가(朴齊家) 등 북경을 다녀온 측근 인사들과 더불어 청(淸)의 발전상을 깊이 연구했다. 박제가의 문집에 쓴 서문인 (초정집서 楚亭集序), 서유본(徐有本)에게 지어 준 한시 (증좌소산인 贈左蘇山人) 등에서 그는 고문(古文)을 피상적으로 모방할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을 본받아 오늘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린 문학을 창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자신의 소탈한 성품과 분방한 생활상을 해학적이고도 여실하게 그린 (수소완정하야방우기 酬素玩亭夏夜訪友記), 묘지명의 상투적 서술방식에서 벗어난 파격적인 표현으로 고인에 대한 추모의 감정을 한층 감동적으로 전한 (백자 증정부인박씨묘지명 伯姉贈貞夫人朴氏墓誌銘), 노장 사상에 의거한 역설적 주장으로 편견을 타파하고자 한 (낭환집서 螂丸集序) 등의 명문들은 이러한 문학관의 소산이었다. 1778년 당시 국정을 좌우하던 홍국영(洪國榮)을 비판하다가 신변의 위험을 느껴, 송도 부근에 있는 황해도 금천군(金川郡)의 연암(燕巖)골로 은둔했다. 연암이란 호는 바로 이 은둔지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곳에서 한석호(韓錫祜) 등 송도의 유수한 청년 문사들을 가르치는 한편, 손수 농사를 지으면서 국내외의 농서(農書)들을 두루 수집?연구했다. 후일 정조에게 진상한 ≪과농소초 課農小抄≫는 이때의 연구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1780년 홍국영이 실각한 직후에, 삼종형(三從兄)인 금성위(錦城尉) 박명원(朴明源)이 중국 사행의 정사(正使)로 임명되자 그 수행원으로 북경을 향한 장도에 오르게 되었다. 일행은 압록강을 건넌 뒤 요양?성경?산해관?통주 등을 지나는 조공로를 따라 북경에 도착했으나, 황제의 특명으로 이전의 조선 사행이 한번도 가 본 적 없던 열하까지 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열하에 체류하는 동안 판첸 라마와 티베트 불교에 대해 견문할 수 있었으며, 윤가전(尹嘉銓)?왕민호(王民?) 등 중국 문사들과 사귀면서 중국의 실정을 알려고 노력하는 한편 지원지동설(地圓地動說)과 같은 조선의 새로운 학설을 소개하기도 했다. 다시 북경으로 돌아와 유리창(琉璃廠)과 천주교 교당 등 명소를 관광한 후 귀국했다. ≪열하일기 熱河日記≫는 귀국 이후 당시의 여행 체험을 정리한 것으로, 열하에서 북경으로 돌아오던 도중 옥갑에 묵을 때 일행들이 나눈 이야기를 기록한 (옥갑야화 玉匣夜話) 등 모두 25편으로 구성된 방대한 저술이다. 1786년 음보로 선공감 감역에 임명된 후 평시서 주부?의금부 도사?제릉령(齊陵令)?한성부 판관을 역임했다. 오랜 은둔생활을 청산하고 뒤늦게 벼슬길에 오른 그 무렵에 가까운 친지와 벗들의 죽음을 잇달아 겪고, 박명원에 대한 묘지명인 (삼종형 금성위묘지명 三從兄錦城尉墓誌銘), 정철조(鄭喆祚)와 홍대용의 죽음을 애도한 (제정석치문 祭鄭石痴文)?(홍덕보묘지명 洪德保墓誌銘)과 같은 감동적인 글을 지었다. 1791년 경상도 지리산 중의 소읍인 안의(安義)의 현감으로 임명되어 1796년 임기 만료로 그곳을 떠날 때까지 실학사상에 입각하여 종래의 미신적인 오행설(五行說)을 비판한 (홍범우익서 洪範羽翼序), 안의 출신의 여성이 남편을 따라 순절한 사실을 기록한 (열녀 함양박씨전 병서 烈女咸陽朴氏傳幷序), 관아에 건물들을 신축하고 지은 (하풍죽로당기 荷風竹露堂記), 그리고 합천 해인사를 유람하고 지은 한시 (해인사) 등과 같은 빼어난 작품들을 남겼다. 그러나 한편 그 무렵 문체반정(文體反正)을 추구한 정조로부터 소설식 문체를 유행시킨 장본인으로 지목되어 견책을 받았을 뿐 아니라, ≪열하일기≫의 명성을 시기한 문인들로부터 오랑캐인 청의 연호를 사용했다고 하여 비방을 받는 등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1797년 충청도 면천 군수로 부임한 후 정조의 어명에 따라 제주 사람 이방익의 해외 표류기인 (서이방익사 書李邦翼事)를 지었으며, 농서를 구하는 정조의 윤음에 호응해서 ≪과농소초≫를 진상하여 문명이 더욱 높아졌다. 순조 즉위초인 1800년 강원도 양양 부사로 승진했으나 이듬해에 사직했으며, 1805년 음력 10월 29일 서울 재동 자택에서 병사했다. 장손인 박규수(朴珪壽)가 현달하여 좌찬성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사후에 아들 박종채(朴宗采)가 유고를 수습?정리한 ≪연암집 燕巖集≫이 필사본으로 전하다가, 1900년 김택영(金澤榮)이 편한 신활자본이 간행되었으며 그에 의해 다시 속편과 중편(重編)이 나왔다. 오늘날 가장 널리 보급되어 있는 ≪연암집≫은 1932년에 간행된 박영철(朴榮喆) 편 신활자본이다. 대표적인 저술은 ≪열하일기≫와 ≪과농소초≫이다. 여기에서 벽돌과 수레 등과 같은 청의 발달된 문물을 적극 수용할 것을 주장하고 선진적인 중국의 영농법 및 농기구를 소개했으므로, 조선후기 북학파(北學派)를 대표하는 실학자로 평가되고 있다. ≪방경각외전≫ 중의 (양반전), ≪열하일기≫ 중의 (호질 虎叱)과 (허생전), 그리고 안의현감 시절 작품인 (열녀 함양박씨전 병서) 등은 조선후기 소설사에서 가장 뛰어난 한문소설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